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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오비

[아나오비] 모형 조립

by 슛유 2021. 8. 13.

 

 

모형 조립

 

이곳 밤하늘은 고향과는 달리 새벽까지 밝아, 웬만한 크기의 별이 아니고서야 불야성을 이루는 시가지의 불빛에 흐려지기에 십상이었다. 나의 고향 행성은 고작 유년기의 기억만으로도 다시는 발조차 들이고 싶지 않은, 볼품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우주 변두리의 행성에 불과하나 그곳 사막에서 올려다보는 수많은 별과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은하수의 경치만큼은 평생에 걸쳐 쉬이 잊히지 않을 장관이었다. 한밤중에 나와 도심의 탁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그곳의 밤하늘은 아직도 여전한지 궁금해지곤 했다.

요새 나는 가벼운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중증까지는 못 되고, 유달리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면 한참을 침상 위에서 뒤척이다 샛별이 뜰 때쯤에야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정도였다. 때로는 아예 작정하고 밖에 나와 몇 시간이고 걸으며 도시의 야경과 밤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지난 몇 년간 보고 겪는 것이 많아지면서 저절로 생긴 습관이었다. 하여 나는 아침잠이 많아졌는데 그런 나를 보고 스승은 갈수록 게으름만 는다며 한소리를 하기도 했다.

제자 된 자로서 외람된 태도일 수 있겠으나, 나는 그런 스승의 타박이 들리지 않는 척 어물어물 넘어가는 편이었다. 나의 늦어지는 기상 시간에 대하여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자니 조금은 억울했고, 부인하자니 그의 말재주와 논리를 따라갈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것 외에도 잔소리 듣는 일이야 예전부터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일이 대꾸해 봤자 괘씸죄만 더하게 될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탓도 있었다.

 

오늘 밤도 일찍 자긴 그른 모양이었다.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발걸음은 사원 근처의 비행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 멀리 새벽이슬에 젖어 든 착륙장의 아스팔트 지면은 360도로 돌아가는 비컨의 빛을 반사하며 번득였다.

"장군님께서 야심한 시각에 이곳까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밤 산책 중이었네."

그때 나를 발견한 항공기 정비병 한 명이 아는 척을 하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멈춰서서 상관에 대한 예우로 거수경례를 했다. 나 역시 곧장 그에게 경례로 답하였는데, 이는 방금까지의 고민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계적인 반응이었다.

그들, 군인들 앞에서의 나는 제다이라기보다는 어린 나이에 일찍 별을 단 장성급 장교에 가까웠다. 실상 나를 어릴 적부터 봐온 제다이 사원 내 소수를 제외하면 요새는 대부분이 그렇게 여기고 있는 듯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나의 존재감은 전자보다는 후자에서 빛이 났다. 나의 쓸모를 증명한다는 점에서 이를 기뻐해야 할지, 본분과 거리가 멀어져 간다는 점에서 슬퍼해야 할지 나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까닭에 전투에서 공을 세워 우쭐한 마음으로 기세등등히 귀환했다가도, 모든 흥분이 가라앉으면 그 아래 감춰왔던 자괴감이 슬며시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다.

스승이 알면 혀를 찰 속내였다. 소인배의 알량하기 짝이 없는 고민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는 우리가 이 성전에서 승리할 것임을 한치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살면서 그처럼 냉철한 이성을 지닌 자가 동시에 맹목적인 열성을 겸비한 경우를 나의 스승을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었다.

그 맹목적인 믿음의 중심에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 그는 우리가, 내가 시스와의 전쟁을 통해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거라 믿었다. 그에게 있어 이 전쟁은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는 과정일 뿐인 것이다. 오로지 내가 선택받은 자이기 때문에. 출처도 불분명한 고대 예언 덕에 노예 신분의 천인이 고귀한 제다이가 되었으니 나는 응당 내 살과 피를 제물로 내어서라도 소명에 응해야 했다. 그것만이 보답할 길일진대, 전쟁의 끝은 요원해 보인다.

어쩌면 생각만으로도 사람은 능히 질식사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전쟁은 우리가 원하는 결말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나는 선택 받는 자도 아니고 모두가 염원하는 포스의 균형은 영영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 때면 나는 서서히 목이 졸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스승이 나를 믿는 방식대로 나 자신을 믿고 싶었다. 그는 결코 나의 능력이 탁월하거나 내가 그에게 신뢰를 주기 때문에 나를 믿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제다이로서 가져야 할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그것이 없다는 게 우리 둘의 극명한 차이였다. 그가 지난 몇 년간 이 모든 것을 겪고도 어떻게 이토록 일관된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라울 따름이었다.

전쟁은 본질적으로 폭력을 수반한다. 우리가 전쟁을 위해 어떠한 대의명분을 구실로 삼든지 간에, 폭력이 발생하는 바로 그 순간, 그 공간에서는 포식자와 피식자만이 존재한다. 실질적으로 생명은 생각과 말이 아니라, 피와 살과 뼈로 이뤄져 있다. 우리는 그것을 몸소 체험함으로써 깨달았다. 적군의 썩어가는 내장에서 풍기는 악취와 조각조각으로 흩어진 전우의 살점을 통하여. 그곳에 정의와 자유, 평등 따위의 서로가 수호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사상과 이념이 끼어들 틈은 없다. 그것들은 늘 전과 후에만 존재할 수 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나는 꽤 오래도록 제다이의 방식이 아닌 군인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다. 삶과 죽음의 본능이 이성보다 우위를 점하는 전쟁터에서 나는 내도록 생존자였다. 이는 하루하루 전투에서 승리하거나 패배할 때마다 내 안의 사고체계와 가치관은 이전의 것과는 다른 성질의 무언가로 변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조금씩 내 본래의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전쟁이 끝난다 하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날씨가 흐려 구름이 낀 밤하늘은 유달리 볼 것 없이 탁하기만 했다. 나는 비행장 주위를 에둘러 걷다가 다시 사원으로 돌아갈 요량으로, 아까 마주쳤던 정비병과 공군들을 지나칠 참이었다.

'케노비 장군께서 곧 도착 예정이다. 각자 위치에서 대기하도록.'

그들을 지나쳐 다시 사원으로 돌아가려던 차에 누군가의 수신기에서 익숙한 이름이 들리고, 저 멀리 하늘에서는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기체 하나가 비행장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나는 정비병에게 가서 물었다.

"마스터 케노비께서는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오시는 건가?"

"얼데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가 밤늦게 오게 되었다 하십니다."

곧 기체가 완전히 착륙하고 비행선의 문이 열리자, 본래는 둘이되 하나로 엉킨 인영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의 부관이 스승을 부축하는 모양새였다.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알고 온 것은 아니고 잠깐 산책 중이었어. 어차피 가는 방향이 같으니 마스터는 내가 모시고 가지. 코디 자네는 숙소로 돌아가게."

내 말에 부관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진 걸 보니 돌아오는 비행 내내 단단히 시달렸던 게 틀림없었다. 스승에게서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겨왔다. 그는 곤드레만드레 취한 주정뱅이가 되어 있었다. 어떤 회의였는지는 몰라도 대단히 즐거운 회의였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걸어가도록 부축해봤자 서로 쓸데없이 힘만 뺄 것 같아 그를 등에 업고 사원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물 한 방울 샐 틈 없이 철저하게 구는 양반이 꼭 결정적일 때 정신을 놓은 버릇이 있어, 그를 업고 평지를 걷는 일쯤이야 예사였다. 한참 걷고 있으니 뜨끈한 온기가 등 뒤로 전해졌다.

"어어, 아나킨이냐?"

"네."

"정말로 내 파다완이야?"

"예, 마스터. 접니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 달려라, 달려! 걷는 속도가 거북이만도 못한 걸 보니 해 다 뜨고 집에 가겠다."

"지금 누구 때문에 제가 느리게 가고 있는데. 아, 거 다리 좀 그만 움직이십쇼. 업어 주는 상대 생각을 좀 하란 말이에요."

"내가 업어 달랬나? 지가 업은 거지."

"고맙다는 말은 못 할 망정... 도대체 술을 뭘 믿고 이렇게 마셔서 주정 부리는 거람."

술을 아주 못하는 양반은 아닌데 이 정도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술주정을 부리는 걸 보니 취해도 여간 취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뭐라 꿍얼대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더니 곧 고개에 얼굴을 박고 작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푸푸 숨을 내쉴 때마다 숨결에 날리는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간질였다.

 

"마스터, 방에 도착했어요. 내려요."

"으응... 싫어."

등 뒤에서 한참 요란하게 다리를 흔들거리던 누구 덕분에 십 분이면 올 거리를 삼십 분은 걸려서야 그의 방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이처럼 엉겨 붙어오는 오는 스승을 억지로 떼고 침대에 눕힌 뒤에야 나는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음을 깨달았다. 로브를 벗고 보니 외출복 차림으로 잠들어 있는 스승의 모습이 답답해 보여, 그의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겉옷 셔츠의 단추를 풀던 중이었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올려다보니 평소와 달리 나른하게 풀린 스승의 두 눈이 나를 담고 있었다. 금빛 속눈썹이 느리게 나풀거렸다. 일순간 나는 무언가 잘못한 기분이 들어 영문도 모르고 그대로 빳빳이 굳었다.

"내 어린 파다완이 웬일로 내 방에 왔지? 수업이 다 끝났나?"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그만 맥이 풀려 나는 그대로 참았던 숨을 헛웃음과 함께 내뱉었다. 술기운에 취해 헛소리를 하는 모양새였다.

"안 그래도 나의 작은 파다완을 위해 줄 게 있었는데."

그리고는 그는 셔츠 주머니 안쪽에 손을 넣고 뒤적이더니 작은 상자 하나를 내 손에 쥐여줬다. 우주선이 그려져 있는 종이 재질의 과자 상자였다. 그는 눈동자를 빛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린애들이나 좋아할 법한 불량식품을 저렇게까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건네주는 이유가 뭘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이것은 영링이던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과자 시리즈였다. 안에 든 과자 맛은 그저 그랬으나 부록으로 든 우주선 모형을 조립하는 재미가 있어 매번 스승에게 조르고 졸라 하나씩 모았는데,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거나 유치를 뽑았을 때와 같이 특별한 날에만 포상으로 주어지곤 했다.

물론 아주 어린 시절의 일로, 그때의 나보다 더 큰 파다완을 거둔 제다이 기사가 된 지금에야 한참 잊고 있던 추억이다. 그것을 그가 여태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네가 가장 좋아하는 거잖니."

간단하게 그렇다고 하면 될 대답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뜨거운 것이 울컥 차올라 목구멍을 막고 있던 까닭이었다.

"예, 마스터. 좋아해요. 많이 좋아합니다."

"그럼 되었다."

가까스로 내뱉은 대답에 스승은 만족한 듯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나는 잠이 든 그를 한참 쳐다보다 불을 끄고 그의 방을 나왔다.

 

로브 주머니 속에 든 과자 상자가 달그락거렸다. 그가 이런 식으로 술에 취해 사고서 맨정신이 된 뒷날 내게 건네주지 못한 것들이 이것 말고도 더 있을까 나는 가늠해보았다. 진실은 그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법이었다.

다만 생각할수록 점점 더 속은 콱 막힌 듯이 답답해졌다.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는 뜨거운 감정을 무어라 정의 내려야 몰랐다. 고마움이나, 감동 등의 순정한 단어로만 치부하기엔 그 안에는 뜨겁고, 불순한 것들이 섞여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도 때로는 섧고 때로는 원망스러운 것처럼.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부서져 내리고 있다. 삶이 유한할진대 어찌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 그러나 나는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오래전 정해진 운명이었다. 하여 나는 존재가 다하여 사라지거나, 영영 내가 모르는 무언가로 변할 것이다. 허무맹랑한 예언 따위에 무슨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간절히 믿는 스승의 진심으로 인하여.

다 큰 제자를 위해 모형 조립이 든 과자를 사는 마음 따위, 이런 것은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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